예금채권과 소멸시효

--------------------------------------------------------------------

서울고등법원판결=1982년4월2일 선고 81나3237판결

참조조문=상법 제64조, 민법 제702조

일. 사실개요

_ 원고(항소인겸 피항소인·상고허가신청인) 박금련부인은 1964년11월경 한국상업은행 부산북지점과 저축예금계약을 체결하여 예금거래를 계속하여 오다가 1965년2월24일에 20만원의 예금인출을 한 것을 끝으로 약1백18만원의 예금잔액을 남긴채 거래를 중단하였다. 그로부터 16년만인 1980년12월에 와서 박부인은 한국상업은행(피고·피항소인겸 항소인·상고허가신청의 상대방)에 예금의 반환을 청구하였다. 그러나 은행은 박부인의 예금채권이 1970년2월24일에 상법상의 5년의 소멸시효 또는 늦어도 1975년2월24일에 민법상의 10년의 채권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박부인의 예금반환청구를 거절하였다.

_ 이에 예금주 박부인은 1981년4월 원금 약1백18만원과 이자(복리계산) 약6백80만원을 합친 약8백만원에 대한 지급청구의 소를 서울민사지방법원에 제기하였다. 이 제1심법원은 1981년8월19일에 「예금반환청구권은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권이고 변론의 전취지에 의하면 원고는 1980년12월경 피고에게 위 예금통장과 인장을 가지고 위 예금의 반환을 청구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원고의 피고에 대한 위 채권의 소멸시효는 위 1980년12월경부터 진행한다」고 판시하고 피고은행은 원고 박부인에게 원금과 이자(단리계산)를 합친 1백69만원 및 소장송달 익일(81년5월7일)이후 완제일까지의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하였다(서울민지판 1981년8월18일 81가합2010). 따라서 박부인은 1981년9월14일 피고은행에 대하여 1백87만원(원리금과 지연손해금)을 가집행으로 찾아가는 일방 패소부분인 약6백30만원과 그 지연손해금에 대한 지급을 받기위하여 서울고등법원에 항소하였다. 피고은행 역시 원심판결에 불복하고 항소하였다.

_ 제2심법원인 서울고등법원에서는 1982년4월2일 원고의 예금채권이 1970년2월23일경 시효에 의하여 소멸하였다고 판시하고 원심판결을 뒤엎어 원고가 가집행으로 받아간 금액을 피고에게 반환할 것을 명하였다.(서울고판 1982년4월2일 81나3217) 이 제2심판결에 대하여 원고는 대법원에 상고허가신청을 하였으나 대법원은 기각결정을 내렸다(대결1982년12월28일 82다카693) 따라서 다음에는 제2심법원의 판결의 요지를 게기한다.

이. 판결요지

_ 「저축예금과 같이 변제기의 정함이 없는 채권은 그 채권성립후 언제든지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음에 비추어 그 채권의 시효는 그 이행을 청구할 수 있는 때인 그 채권의 성립시부터 진행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한편 위 저축예금채권에 관하여 그 채권성립후 1965년2월24일자로 금20만원이 최종적으로 인출된 것은 앞에서 본바와 같고 이는 피고은행의 채무승인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므로 결국 위 저축예금채권의 시효는 위 채무승인일인 1965년2월24일부터 진행한다고 할 것이고, 다음 그 시효기간에 관하여 보건대 피고은행이 상사법인으로서 원고와 한 위 저축예금거래계약의 체결이 그 상행위이고 따라서 위 저축예금채권이 피고은행에 관한한 상사채권인 사실은 당원에 현저한바 그렇다면 그 시효기간은 상법제64조의 규정에 의해 5년이라 할 것이며… 위 저축예금채권은 결국 1970년2월23일경 5년의 상사시효가 완성되어 시효로 소멸되었다고 하겠다.

삼. 평 석

(1) 예금계약의 법적 성질

_ 예금계약은 은행 기타 금융기관의 업무인 예금거래(상법46조8호)를 법률관계로 형성시키는 법률요건이다. 그 법률적 성질은 일반적으로 금융기관을 수치인으로 하는 금전의 소비임치 또는 불규칙임치로 파악되고 있다. 소비임치에 대하여는 원칙으로 소비대차의 규정이 준용된다(민법702조본문). 다만 소비대차가 보통 채무자인 차주의 이익을 위하여 소비할 목적으로 물건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기한은 차주의 이익을 위하여 있는것인데 대하여 소비임치 는 채권자인 예금주등의 임치인을 위하여 보관할 목적으로 물건을 맡는 것이기 때문에 기한의 이익은 임치인에게 있다. 그래서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소비대차의 경우에는 대주는 상당한 기간을 정하여 반환을 최고할 수 있고 차주는 언제든지 반환할 수 있지만(민법603조2항)소비임치의 경우에는 임치인은 반환시기에 관한 약정이 없는한 언제든지 반환을 청구할 수 있게되어 있다(민법702조단서). 이사건의 저축예금은 이른바 요구불예금으로서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소비임치인 것이다.

_ 이에 대하여 예금은 금융기관이 오직 예금자의 이익만을 위하여 금전을 보관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므로 예금계약을 전형적인 소비임치라고 할 수 없다고 하고 이는 원래 근대적인 은행경영에 따라 발달한 특수성있는 일종의 무명계약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이 견해에서도 달리 별도의 특약이나 관습이 없는 경우에는 이와 가장 가까운 전형계약인 임치나 소비대차에 관한 규정을 유추적용하여야 한다는데 대하여는 거의 이론이 없기 때문에 법규의 적용문제에 있어서는 소비임치설과 거의 차이가 없다.

_ 예금계약에 의하여 금전을 예입하게 되면 예금주는 그것에 대한 반환청구권 곧 예금채권을 취득한다. 이 예금채권이 소멸시효에 걸릴 수 있는 것인가가 먼저 문제이다. 그것이 긍정된다고 하면 다음 단계로 구체적인 시효기간내지 그 기산점이 문제가 된다.

(2) 예금채권의 시효소멸의 여부

_ 예금채권 특히 정기예금의 경우와 달라 채권의 단일성과 예입기간이 명확하지 않는 요구불예금이나 통지예금의 경우의 예금채권은 그 성질상 시효에 의하여 소멸되지 않는다는 견해가 있다. 즉 임치계약에서는 임치인이 그 보관을 청구하는 것이 계약상의 권리이기 때문에 예금한채 그대로 보관시켜 두고 있다는 것이 바로 권리행사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는 것밖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고 따라서 예금채권에는 소멸시효의 문제가 생길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_ 그러나 예금계약의 체결에 의하여 그 목적물인 금전의 소유권이 은행등의 금융기관에 이전되고 예금주는 예금의 반환청구권이라는 채권을 가지는데 불과한 이상 그것에 대한 소멸시효의 적용을 부인할 수 없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금융기관 측에서는 수많은 예금주를 상대로 하여 장부의 정비·보관·이자계산등 번잡한 업무의 처리를 하는데도 아주 오랫동안 거래실적이 전혀없는 이른바 휴면구좌를 많이 유지한다는 것은 여간 큰 부담이 아니다. 소멸시효의 제도는 이점에서도 예금채권에 관하여 그 존재의의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예금채권에 대한 소멸시효의 성립을 전제로 하여, 이 사건의 판결을 하고있는 서울고등법원 및 원고의 상고를 허가하지 않은 대법원의 태도는 잘못됨이 없다. 제1심법원인 서울민사지방법원도 예금채권이 소멸시효에 걸린다는 것까지는 부인하지 않고 있음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3) 예금채권의 시효기간과 그 기산점

_ 예금채권도 하나의 채권으로서 시효의 완성으로 소멸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면, 그 소멸시효기간은 상법제64조에 의한 원칙적인 시효기간인 5년이라고 하여야 마땅하다. 금융기관이 행하고 있는 예금거래는 상법제46조제8호의 기본적 상행위인 금융거래에 속한다. 예금주의 예금반환청구권은 이 금융거래에 바탕을 둔 채권으로서, 상법제64조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다. 이 「상행위」는 채권자와 채무자 모두 한테 상행위가 되는 쌍방적 상행위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고 그 어느 일방에게만 상행위가 되는 일방적 상행위이어도 상관없다. 따라서 예금계약이 비록 예금주 측에서는 상행위가 되지않아도 예금주의 예금채권은 상행위로 인한 채권이 되어 5년의 시효기간에 관한 상법제64조의 적용을 받는 것이다. 제2심법원도 이와같이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제1심에서는 예금채권이 시효에 걸린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구체적인 시효기간 또는 그것에 대한 적용법규에 관하여는 판단하고 있지 않다.

_ 다음에 예금채권에 관한 시효기간의 기산점을 보면, 이는 예금거래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이 사건의 저축예금 내지 보통예금과 같은 요구불예금의 경우에는 예입과 반환이 되풀이되는 관계로 소멸시효의 기산점이 언제가 될것인가에 관하여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요구불예금은 반환시기의 정함이 없고 예금주는 언제든지 그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에(민법702조단서) 소멸시효는 예입과 동시에 진행된다고 해석하여야 할 것이다(민법166조1항참조). 다만 1구좌 또는 1통장의 예금은 단일의 채권관계로 취급하는 것이 당사자의 의사 및 통장의 형식에도 적합하기 때문에 예입시마다 별개의 예금채권이 성립되는 것이 아니고 예입에 의하여 증가하고 반환에 의하여 감소·소멸하는 1개의 잔액채권이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일부의 반환(인출) 또는 예입이 있을때마다 시효는 중단되어 그때로부터 새로 시효가 진행되며, 요구불예금이 소멸시효에 걸리는 것은 예입도 반환청구도 없이 5년이 지난 때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판결도 예금주가 마지막으로 예금일부의 반환을 받은지 5년이 지난때에 소멸시효가 완성되었다고 함으로써, 역시 같은 견해를 보이고 있다.

_ 예금주의 은행등에 대한 예금의 반환이나 이자의 청구 및 은행등의 예금주에 대한 그 반환 또는 이자를 기입한 통장의 교부는 청구 또는 채무의 승인으로 시효중단 사유가 된다(민법168조1호·3호). 다만 은행등이 내부적으로 장부에 예금이자를 원금에 가산하는 기입만으로는, 예금주에 대한 구체적인 채무의 승인의사표시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시효중단의 효력이 생기지 않는다고 본다.

_ 그런데 제1심법원은 반환시기의 약정이 없는 채권의 시효기간은 실제의 예금인출시가 아니라 단순히 반환청구권을 행사한 때로부터 진행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리가 성립되기 위하여는 언제든지 반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예금채권에 대하여 반대로 예금하여 둔채 그 반환을 청구하지 않는 것이 바로 권리행사라고 해석하여야 한다. 그렇게 본다면 아예 예금계약과 같은 임치의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문제가 생길 수 없다는 논리로 일관하여야 옳을 것이다. 또 예금채권도 소멸시효에 걸린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 시효기간의 기산점에 관하여는 제1심판결과 같이 해석하면, 예금주의 예금반환청구(예비적 시효중단사유로서의 최고)에 은행이 응하지 않는 금액에 대하여서 밖에 시효의 중단(물론 최고에 이은 소구가 있어야 한다)과 진행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도 승인하여야 할 것이다.

(4) 결 어

_ 은행 기타의 금융기관과의 예금계약에 의한 예금주의 예금반환청구권도 소멸시효제도에 관한 법규의 적용대상인 채권이며, 그 불행사가 오래 계속되면 법정의 시효로 소멸하는 것이다. 그 시효기간은 상법제64조의 상행위로 인한 채권에 관한 시효기간 5년이다. 따라서 이 사건에서 원고가 마지막으로 예금을 인출하여간 날로부터 5년이 경과한 때에 예금채권이 소멸되었다고 한 서울고등법원과 상고허가신청의 기각으로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대법원의 태도는 옳다. 그리고 법률적으로는 예금채권에 관한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은행은 물론 그것을 내세워 예금반환채무를 면할 수 있다.

_ 그런데 은행은 기업중에서 가장 신용이 두텁고 예금고객은 은행에 대한 아주 강한 신뢰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은행이 소멸시효를 주장하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저항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예금주가 오랫동안 예금을 반환하여 가지 않는 것은 오히려 은행측에서 환영하여야 할 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은행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영업적 견지에서 시효기간이 만료되었더라도 소멸시효를 주장하지 않고 확실히 원장의 계정에 예금잔고가 있는한 그 반환청구에 응하는 것이 보통일 것이다. 이 사건의 제2심판결 후 피고은행은 원고가 제1심판결에 의하여 가집행하여 찾아 간 1백87만원에 대하여 제2심의 승소판결에도 불구하고 그 반환청구를 포기하겠다고 한바 있다. 다만 예금의 반환청구자가 은행의 장부상의 예금자로 기재되어 있지 않다든가 이미 그 예금이 지급되어 있다든가, 또는 당해 예금에 관하여 분쟁이 있어서 진정한 권리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든가 반환청구자가 무권리자임에 틀림없다고 인정되는 등의 경우에는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여도 무방하지 않을까 한다.

_ 은행이 영업정책등의 견지에서 예금채권의 시효소멸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사후적인 시효이익의 포기인데(민법184조1항참조) 타인이 그 포기를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소송에서 은행이 법률상의 시효의 완성을 내세우면 법원으로서는 마땅히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비록 예금채권에 대하여 적용할 소멸시효규정이 불합리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외면하고 판결을 할 수는 없다. 그것을 바로잡아야 할 임무까지 법관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_ 물론 은행과 같은 공신력있는 금융기관에 대한 안전·확실한 금전의 보관을 기대하는 일반 예금주로서는 당연히 상당한 기간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장기간의 예금관계의 지속을 예정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상법에서와 같이 비교적 단기간에 예금채권이 시효로 소멸되고 만다는 것은 확실히 불합리한 일이다. 따라서 특별한 입법조치에 의하여 예금채권에 관하여는 현행법상 가장 장기인 20년(민법162조2항)정도의 시효기간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법무에 대한 겸손한 자신감을 가집시다.
                                              - by smilelaw -